본문 바로가기

여행정보/강원도

솔숲이 빛으로 깨어나던 밤 강릉 하슬라이머시브아트쇼

반응형


솔숲이 빛으로 깨어나던 밤 — 강릉 하슬라이머시브아트쇼

아이가 "엄마, 나무가 살아 있어" 하고 속삭이던 순간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강릉에 가면 늘 바다를 먼저 찾게 된다. 경포호 주변을 걷고, 카페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듣다가, 해가 지면 숙소로 돌아가는 익숙한 패턴. 그런데 이번 주말은 달랐다. 해가 지고 나서야 진짜 일정이 시작됐다.



솔밭에서 만난 낯선 세계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낮에 지나쳤을 때만 해도 그냥 조용한 공원이었다.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솔밭,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놀이터. 평범한 풍경.

그 솔밭이 밤에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된다.

하슬라이머시브아트쇼. 강릉의 옛 이름 '하슬라'를 품은 이 미디어아트 쇼는 올해 5월부터 시작된 신생 야경명소다. 첫 오픈날 3천 명이 넘게 찾았다는 말에 '얼마나 대단하길래' 싶었는데, 직접 가보니 그 반응이 이해됐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원형 구조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슬라'라는 글자가 새겨진 이 출입구 앞에서 아이가 잠깐 멈춰 섰다. 평소 사진 찍는 걸 귀찮아하는 아이인데, 이번엔 스스로 "여기서 찍자"고 했다. 그 자체로 이미 반은 성공이었다.


나무가 말을 걸어오는 공간

코스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인터랙티브 작품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손바닥을 갖다 대면 색깔이 바뀌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나무 밑둥. 처음엔 우리 아이도 반신반의하며 살짝 손을 댔다가, 진짜 반응이 오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다음부터는 달려가서 먼저 손을 뻗었다.

거대한 나무 안쪽에서 오색 레이저가 쏟아지는 공간은 판타지 영화 속 어딘가 같았다. 어른인 나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그 안에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물고기들이 흩어지는 작품 앞에서는 아이가 한참을 서서 물고기를 쫓아다녔다.

그리고 발밑에 깔린 나무조각 향과 솔숲의 피톤치드가 공간 전체에 스며있었다. 실외인데, 어딘가 포근하고 낯설었다. 빛과 숲과 냄새가 한꺼번에 감각을 건드리는 묘한 경험이었다.


솔숲 전체가 무대가 되는 순간

코스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거대한 스크린이 나타난다. 이세계로 통하는 문처럼, 나무들 사이에서 빛나고 있다.

여기가 메인이다.

쇼는 하루 네 차례 진행된다 — 19시 30분, 20시, 20시 30분, 21시.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시간조차 설레는 건, 주변 분위기가 이미 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영상이 시작되면 강릉의 옛 이름 하슬라와 경포의 전설 '다섯 개의 달'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섯 개의 달이 완성되는 순간 고대 숲 하슬라가 깨어난다는 서사.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이 직접 제작한 음악이 솔숲 사이를 채운다. 전통 악기 소리가 생각보다 훨씬 공간에 잘 어울렸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주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솔숲 전체가 레이저와 빛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에 담으려다 그냥 눈으로 봤다. 나무 사이를 타고 퍼지는 빛은 화면 속에 가두기가 아깝게 아름다웠다.


아이와 함께라면 알아두면 좋은 것들

돗자리나 낮은 의자는 꼭 챙기자. 메인 쇼가 약 20분 이어지는데, 아이들은 앉아야 집중하기 편하다. 너무 높은 의자는 뒷분들 시야를 가리니 낮은 걸로.

자리는 뒤쪽이 의외로 좋다. 앞에 있으면 영상은 잘 보이지만, 빛의 쇼가 펼쳐질 때 주변 전체를 감상하기 어렵다. 뒤에서 보면 솔숲이 통째로 빛나는 장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아이가 "나무가 다 빛나고 있어"라고 한 것도 그 자리에서였다.

쇼가 끝난 후에도 동선이 남아 있다. 빠르게 회전하는 전통 문양 작품, 조명이 시시각각 변하는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아이들이 특히 회전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문다. 어지러울 수 있으니 너무 오래 보지 않도록.

나오는 길에 메타버스체험관 쪽 놀이터를 지나치게 된다. 낮엔 그냥 놀이터인데 밤엔 불빛이 들어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쇼를 보고도 에너지가 남아도는 아이들에게 딱이다.


한 번 더 들러도 좋을 이유

관람료는 무료다. 5월부터 12월 말까지 매일 운영하니 강릉을 자주 찾는 분들이라면 계절마다 다른 분위기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우천 시 취소되니 날씨 확인은 필수.

주차 팁: 공원 주차장 대신 근처 메타버스체험관 주차장을 추천한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공원에 들어갈 수 있고, 다리 위에서 경포호수로 흘러가는 냇가도 볼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솔밭 산책을 먼저 하고 입장하는 것도 좋다.

실외 공간이라 모기 기피제와 얇은 겉옷은 챙겨 가자. 밤바람이 생각보다 시원하다.



강릉의 밤이 달라지고 있다. 바다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저녁이 아니라, 솔숲 안에서 빛과 소리에 둘러싸여 아이의 눈빛을 바라보는 저녁.

그 하룻밤이,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하슬라이머시브아트쇼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초당동 474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솔밭) 운영: 2025년 5월~12월 말, 매일 / 우천 시 취소 관람료: 무료 쇼 시간: 19:30 / 20:00 / 20:30 / 21:00 (1일 4회)

 

하슬라강릉이머시브 아트쇼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초당동 474-4
반응형